대한민국 축구의 역사 2002년 최용수

이번 글에서는 한국 축구의 역사인 공격수 최용수 선수에 대해 알아보겠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 시대를 상징하는 공격수가 있다. 냉정함과 집중력으로 골을 만들어내던 선수이자 현재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인물, 최용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그는 경험 많은 스트라이커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고 그라운드 안팎에서 팀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이후 프로 무대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공격 전술 발전에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2025년의 그는 더 이상 선수로서 골을 넣지는 않지만 감독으로서 또 다른 방식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K리그의 간판 공격수

최용수는 1973년생으로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중학교 시절부터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연세대학교를 거쳐 1994년 LG 치타스(현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첫해부터 날카로운 슈팅 감각으로 주목받았고 프로 2년 차에는 K리그 득점왕 경쟁에 이름을 올렸다. 공을 다루는 동작이 간결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침착하게 마무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의 득점 장면은 언제나 계산된 듯 정확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는 신뢰받는 공격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비롯해 2000년 아시안컵 등 주요 대회에서 꾸준히 출전했다. 그는 단순히 골을 넣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경기 리듬을 조절하고 후배 선수들의 멘탈을 다잡는 선배였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의 최용수는 “화려하지 않아도 효율적인 공격수”였다. 불필요한 동작 없이 상대 수비의 빈틈을 정확히 공략했고 필요한 순간에만 움직였다. 그 절제된 플레이가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한일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 이름을 새긴 대회였다. 최용수는 그 대회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에는 안정환, 황선홍, 이동국, 설기현 등 다양한 공격 자원이 있었지만 최용수는 경험과 위치 감각으로 전술적 균형을 담당했다. 조별리그 경기에서 그는 교체 멤버로 출전하며 전방 압박과 연계 플레이를 소화했다.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경기 흐름을 바꾸는 순간마다 투입되어 팀의 리듬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최용수를 “전술 이해도가 높은 공격수”라고 평가했다. 공격수이지만 수비 가담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위치 이동을 통해 동료 선수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의 움직임 덕분에 손흥민 이전 세대의 공격수들은 팀을 위한 플레이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2002년의 최용수는 결정적인 득점보다 ‘보이지 않는 기여’로 빛난 선수였다. 골은 많지 않았지만 팀의 흐름과 전술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일본 도전

2000년대 초반 최용수는 일본 J리그로 진출했다.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와 교토 퍼플상가에서 활약하며 꾸준히 출전 시간을 확보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그를 “경험이 많은 냉정한 공격수”로 평가했다. 한국 선수 특유의 투지와 강한 정신력이 일본 리그에서도 통했다. J리그 시절에도 최용수는 꾸준히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했다. 이후 2006년 FC서울로 복귀해 리그 후반부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누며 팀의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그 시절 FC서울의 젊은 선수들은 최용수를 ‘훈련장에서 가장 집중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경기보다 훈련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기본기를 완성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2008년 공식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로서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은퇴식에서 그는 “나는 여전히 축구 안에 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FC서울의 리더

2025년의 최용수는 더 이상 골을 넣지 않는다. 이제 그는 벤치에서 팀의 승리를 만들어가는 감독이다. FC서울 감독으로 여러 시즌을 이끌며 K리그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증명했다. 그의 지도 철학은 명확하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 이 철학은 그가 선수 시절 직접 체득한 가치이기도 하다. 선수 시절부터 팀플레이를 중시했고 감독이 된 지금도 선수들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경기 중 벤치에서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훈련장에서는 엄격하지만 경기 후에는 따뜻하게 선수들을 감싸는 지도자다. 팬들 사이에서는 ‘감정의 리더’, ‘현장형 감독’으로 불린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주 이렇게 말한다. “선수 때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팀 전체가 잘해야 한다.” 이 말은 그의 책임감과 철학을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2025년의 최용수는 한국 축구가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현장을 잘 알고, 선수의 심리를 이해하며 승부보다 팀의 방향을 먼저 본다.

2002년의 최용수는 냉정한 공격수였다. 골문 앞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팀이 필요할 때 침착하게 한 방을 터뜨리는 선수였다. 기술보다는 판단이 강했고 자신보다 팀의 균형을 우선시했다. 2025년의 최용수는 그때의 판단력과 책임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도자다.

이번 글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공격수로 활약한 최용수 선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다음 글에서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를 소개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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